접근성의 역설
사람을 위한 웹의 구조가, 기계를 위한 언어가 되는 과정
접근성은 거의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드문 개념 가운데 하나입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웹사이트를 더 쉽게 탐색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대체로 이견이 없는 가치로 여겨집니다. 시맨틱 HTML, 설명이 담긴 링크, 의미 있는 이미지 설명, 키보드 내비게이션은 모두 더 포용적이고 사용하기 쉬운 웹을 만드는 데 기여합니다.
그런데 AI 시대가 열리면서 이 이야기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아이러니한 변수가 하나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정보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인 웹사이트가, 역설적이게도 기계가 정보를 수집하기 가장 쉬운 웹사이트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것은 애초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WCAG)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사람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스크린 리더는 페이지의 구조를 이해해야 하며, AI 크롤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각장애 사용자는 의미 있는 이미지 설명의 도움을 받으며, 언어와 시각적 개념을 연결하려는 멀티모달 모델도 같은 이점을 얻습니다. 검색 엔진이 시맨틱 HTML의 혜택을 받는 것처럼, 학습 데이터를 수집하는 대규모 언어 모델 역시 그 구조를 활용합니다.
공통점은 콘텐츠가 사람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기계가 더 쉽게 해석할 수 있도록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웹 접근성 표준은 의도하지 않은 역할 전환을 겪게 됐습니다. 접근성 표준은 처음에는 장애인을 위한 배려와 지원 장치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기술 산업 가운데 하나를 떠받치는 인프라 역할까지 하고 있습니다.


